소니와 애플의 엇갈린 운명, 그 이유는(2)
BY 서재교   |  2010.04.26

한 때 세계 최첨단 기업이던 소니가 부진하다. 한편 소니와 비슷하게 ‘마니아’에 집중한 전략을 펼치던 애플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삼성전자는 어느 길을 가야 할까?


일본 IT업계를 대표하는 다국적기업 소니(Sony)가 5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3분기(2009년 10월 ~ 12월)에 순이익 792억 엔(1조 50억원)을 기록해 5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됐다. 전년 동기에 비해선 662% 개선된 결과다. 매출은 2조 2400억 엔으로 3.9%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1461억 엔을 기록했다. 하지만, 흑자로 돌아선 배경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원가절감이 주된 이유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소니는 공장의 18%를 폐쇄하고, 2만 명을 해고했다. 또한, 협력업체를 압박해 원가 3300억 엔 가량을 줄여 소니의 주력 게임기 상품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제조원가를 30% 정도 절감한 것도 주된 이유였다.


삼성이 독일 베를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선보인 52형(인치) 대형 사이즈의 울트라슬림 엘시디 티브이는 두께가 2.54㎝에 불과하다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4월 6일 삼성전자는 2010년 1분기 예상실적을 발표했다. 글로벌 연결기준(해외실적 포함)잠정 매출액 34조에 영업이익 4조 3천억이다. 전년 동기 대비 628%, 전 분기 대비 25%가 증가했다. 반도체, LCD,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 부문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소니는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삼성전자와 일합을 겨루고 있다. 하지만, 2002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이 후, 지난해 탄생 30주년을 맞은 워크맨은 MP3 시장에서 애플의 ‘I-pod’에 밀려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장 점유율로 고전하고 있다. 소니가 자랑하는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시리즈는 닌텐도 DS와 닌텐도 Wii에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으며, 코니카와 합병을 통해 야심차게 뛰어들었던 DSLR(Digital Single-Lens Reflex)카메라 사업에서는 캐논(Canon)과 니콘(Nikon)에 밀려 한 자릿수 시장 점유율에 그치고 있다. 휴대폰 사업을 위해 에릭슨과 합병한 소니-에릭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맹렬한 속도로 노키아를 추격하고 있는 반면, 5분기 연속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렇다면, 소니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LBS(London Business School) 도널드 설(Donald N. Sull) 교수는 ‘Why do good companies go bad?’에서 소니와 같이 초우량기업들의 몰락 원인으로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는 개념을 이야기 했었다. 활동적 타성은 과거 성공의 원형을 잊지 못해 이에 집작하는 일반적인 타성과 달리, 혁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요소들이 바뀌지 않아 점차적으로 뒤처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서 ‘전략적 프레임(Strategic Frames)’, ‘프로세스(Process)’, ‘관계성(Relationship)’, ‘가치(Values)’측면에서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전략적 프레임은 경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역할을 하며, 세상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정보를 해석해 가치를 창출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혁신을 추구하는 경영자의 전략적 프레임은 외부 환경에 유연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전략적 프레임은 오히려 경영자의 시야를 가리는 눈가리게(Blinder)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둘째, 프로세스는 최종 제품(end product)이 결정되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은 제품을 구성하는 원자재에서부터 제조, 마케팅, A/S 등 프로세스의 혁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프로세스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기능만을 삽입해 혁신을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혁신이라 부르기 어렵다.


셋째, 관계성이 의미하는 것은 기존 고객, 공급업체, 주주와의 관계가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이론에서는 매출과 이미지에 영향력이 큰 충성도 높은 고객을 잘 관리하라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충성도 높은 고객의 의견을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혁신에 실패하고 결국엔 그 고객들마저도 떠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넷째, 가치는 기업이 성숙함에 따라 기업의 문화와 가치가 경직된 규칙과 규제로 굳어지고, 결합력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향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성장을 경험하는 기업들이 겪기 쉬운 현상이다.


소니는 2005년과 2009년, 본사 CEO와 소니-에릭슨 CEO를 교체했다. 경영자의 전략적 프레임을 전반적으로 교체해 보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소니의 PS 시리즈는 일반 대중들을 위해 제품을 개발하는 닌텐도와 달리 여전히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버리지 않고 있다.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경쟁업체들이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앞 다투어 쏟아내고 앱스토어로 고객을 유인하는 동안, 소니 에릭슨은 사이버샷폰, 워크맨폰 등 기존 소니 제품의 명성에 기댄 엔터테인먼트 기능 중심 휴대폰에 집중하며 시장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장에 적응하기 보다는 과거의 성공 신화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활동적 타성에 빠져 부진을 겪는 기업도 있지만, 이를 잘 극복한 기업도 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역설적이게도 빌게이츠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였다. 하지만, PC시장 초기 애플 컴퓨터의 성공에 집착해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지나치게 고집한 것이 화가 되었다. 기술 위주의 전략적 프레임이 오히려 ‘눈 가리개’로 작용해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은 것이다. ‘활동적 타성’에 빠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반면교사로 삼았다.  결국, 그는 I-pod과 I-phone를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세계 최고 IT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얻었다. 이러한 예는 또 있다.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군림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 PC시장을 넘겨주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던 IBM 역시 기존 하드웨어에 중심으로 굳어진 기업의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 오픈 소스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솔루션 분야를 통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세계 최초로 64비트 칩을 쓴 개인용 컴퓨터 ‘파워맥 지5(G5)’ 발표회를 하고 있다. (출처-한겨레 자료사진)

 

결과적으로 활동적 타성은 과거에 성공을 불렀던 아주 매력적인 요인에서 시작된다. 기업의 성공을 견인했으면서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느 새 혁신을 방해하는 구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달콤하지만 몸쓸 유혹이다. 따라서 활동적 타성이란 성공을 경험한 조직이라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항상 내재해 있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다. 현재 거침없이 세계 속을 항해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IT업체들도 애플이 TV를 생산하고, 구글이 휴대폰을 만들고, 중국이나 인도의 가전업체가 생활 가전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순간, 활동적 타성, 그 달콤한 유혹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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