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 김미경 KAIST 경영대학원·의과학대학원 교수·의학박사·미국 변호사
김미경 KAIST 경영대학원·의과학대학원 교수·의학박사·미국 변호사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법대를 다녔다.
피를 토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법률가의 눈으로 의학을 접하면서
의사 시절 몰랐던 면들을 깨닫는다.
다채로운 삶에 감사할 따름이다.

 
 
최 근 들어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내 연구실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심지어 다른 대학 학생들까지 찾아온다. 내가 한국에서 전문의로 15년간 일한 뒤 미국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딴 경력 때문인 것 같다. 의사이자 프로그래머, 벤처기업가였던 안철수 교수가 내 남편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융합은 서로 다른 두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연결 고리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융합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많은 사람의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새롭게 학교에 다니는 것에는 이러한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위험이 있다.

우선 융합이 아니라 새로 전공한 분야로 밀려가게 될 수 있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한번 쌓아놓았다고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현장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게 된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새로 시작한 분야만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의 사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법대를 다닐 때, 미국과 일본에서 의학 관련 자문 의뢰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법대 공부도 벅차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법대를 졸업하고서 스탠퍼드 의대의 자문교수로서 예전 전공했던 분야의 발전한 기술과 응용 분야를 따라잡는 데 3년이 걸렸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지 금까지 고생해서 쌓았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시간적·경제적· 심적인 부담이 매우 크다. 아무런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다져야 했고, 사람 네트워크도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으며, 나이 들어 공부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 피를 토하기도 했다.

많은 고생을 하고 졸업하고서 융합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더라도, 사회적인 보상에 실망할 수도 있다. 의대와 법대를 모두 졸업하면 기회가 많을 것 같지만, 아직 국내에서의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의대에서는 기왕에 뽑을 사람은 의대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지, 의대 일 절반, 법대 일 절반을 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법대에서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융합분야는 각 분야에 맡기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학 총장, 기업체 사장과 같은 최고 책임자가 비전과 신념을 가지고 추진해야만 융합적 인재가 모이고 일이 시작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이다. 고생해서 두 분야의 학위를 받더라도 오히려 더 자리를 찾기 힘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융합적 인재가 되기 위해 꼭 다시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탠퍼드 법대 지도교수였던 행크 그릴리(Hank Greely) 교수는 과학이라고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생명과학 분야와 관련된 이슈들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다 보니 틈틈이 공부를 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전문지식을 쌓았다. 나중엔 의사나 생명과학자와 전문적인 대화를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은 스탠퍼드 법대에서 법과 생명과학센터(Center for law and the biosciences)의 소장이며 의대 유전학교실의 명예교수다.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2006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던 스탠퍼드 의대 앤드루 파이어(Andrew Fire) 교수도 자신이 출원한 특허의 법률적인 부분들을 법률가들과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법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융합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시 새로운 분야의 학교에 다니지 말고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학생이 자기의 미래 진로와 융합 분야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됐다.

두 가지 전문 분야에 익숙하기까지의 과정이 비록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보람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의학과 법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세 가지 분야가 생겨난다. 생명과학의 지적재산권 분야, 생명과학과 의과학의 윤리 분야, 의료 소송 분야가 그것이다. 이러한 분야들은 어느 한 쪽만 아는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분야다. 나는 두 분야의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근무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누가 시키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법률가의 눈으로 의학기사나 논문을 접하면서, 의사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들을 깨달을 때마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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